어린 왕자의 별 B-612, 생텍쥐페리의 상상이 우주에 남긴 아름다운 흔적

“어린 왕자가 살던 별은 정말 하늘 어딘가에 있을까요?”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읽다 보면 이런 엉뚱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책 속 어린 왕자의 고향은 소행성 B-612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실제 우주에는 B-612와 연결되는 46610 베시두즈(Bésixdouze)라는 소행성이 존재합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이름을 딴 2578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를 연상시키는 프티 프랭스(Petit-Prince)라는 소행성 위성까지 있습니다.
한 권의 동화가 실제 천문학의 이름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어린 왕자》를 10대부터 읽기 시작해서 지금도 읽고 있으니까 정말 많이 읽고 있는 책입니다.
그리고 이 《어린 왕자》를 쓴 1944년 정찰비행 중 미귀환한 생텍쥐페리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합니다.
이번 글에서는 '어린 왕자'와 그의 별과 그 주변에 만들어진 작은 우주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는 어떤 책일까?

《어린 왕자》의 원제는 《Le Petit Prince》입니다.
프랑스의 작가이자 비행사였던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Antoine de Saint-Exupéry, 1900~1944)가 쓰고 직접 그림까지 그렸습니다.
이 작품은 1943년 4월 미국 뉴욕에서 프랑스어판과 영어판으로 처음 출간되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생텍쥐페리가 세상을 떠난 뒤인 1946년 갈리마르에서 출간되었습니다.

겉으로 보면 어린이를 위한 동화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른과 아이, 사랑과 책임, 우정과 관계,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이야기의 시작은 사하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사와 어린 왕자의 만남입니다.
어린 왕자는 자신이 아주 작은 소행성에서 왔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곳에는 장미 한 송이와 바오바브나무가 있고, 화산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 여러 소행성을 여행합니다.
그 과정에서 왕, 허영꾼, 술고래, 사업가, 가로등 켜는 사람, 지리학자를 차례로 만납니다.
이들은 각각 권력, 허영, 중독, 소유욕, 의무, 지식에 지나치게 매몰된 어른들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마침내 지구에 도착한 어린 왕자는 여우를 만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책임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배웁니다.

2. 어린 왕자의 고향, 소행성 B-612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가 사는 곳은 소행성 B-612입니다.

책 속에서는 B-612가 1909년 한 튀르키예 천문학자에 의해 망원경으로 관측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천문학자가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른들은 그의 발견을 믿지 않았고, 이후 유럽식 복장을 하고 다시 발표한 뒤에야 인정받았다는 설정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천문학 이야기가 아닙니다.
생텍쥐페리는 이 에피소드를 통해 어른들이 진실 그 자체보다 숫자와 외형, 권위와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습을 풍자합니다.

B-612 역시 실제 천문학에서 확인된 천체가 아닙니다.
즉, 어린 왕자의 고향이라는 B-612는 생텍쥐페리가 창조한 허구의 소행성입니다.
그런데 이 작은 별의 모습은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어린 왕자의 별에는
장미 한 송이가 있고
바오바브나무 씨앗을 뽑아야 하며
활화산 두 개와 휴화산 하나가 있고
어린 왕자는 의자를 조금씩 옮겨가며 일몰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어린 왕자가 하루에 여러 번 일몰을 볼 수 있다는 설정은 이 별이 얼마나 작은지를 보여주는 재미있는 장치입니다.
(B612는 집 한 채보다 조금 클 정도로 아주 작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재미있는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B-612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데, 왜 베시두즈라는 소행성이 등장하는 것일까요?”
바로 이 지점에서 문학과 천문학이 만납니다.

지구와 소행성 B612의 상상도
지구와 소행성 B612의 상상도 @NASA

3. 46610 베시두즈, 현실에 등장한 B-612

실제 천문학에는 46610 Bésixdouze(베시두즈)라는 소행성이 있습니다.
이 천체는 1993년 10월 15일 일본 홋카이도 기타미 천문대에서 일본의 아마추어 천문학자 엔다테 긴(Kin Endate)과 와타나베 가즈오(Kazuro Watanabe)가 발견했습니다.
다만 그보다 앞서 1986년 크림 천체물리천문대에서 촬영된 관측 기록이 있었고, 당시에는 궤도를 확정할 만큼 충분한 관측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소행성이 특별한 이유는 숫자에 있습니다.
46610을 16진수로 변환하면 B612가 됩니다.
그리고 'Bésixdouze'라는 이름 자체도 프랑스어로 B-6-12(B(베), 6(시), 12(두즈))를 읽은 것과 같은 형태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작품 속 B-612를 실제 소행성의 이름으로 옮겨놓은 것입니다.

소행성센터(Minor Planet Center)는 2002년 11월 20일 이 이름을 공식적으로 발표했습니다.
명명 제안은 F. 에머리(F. Hémery)와 이르지 그리갈르(Jiří Grygar)가 독립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재 알려진 자료에 따르면 베시두즈는 화성과 목성 사이 소행성대에 있는 약 2km 크기의 소행성이며, 태양을 약 3.42년에 한 바퀴 돕니다.
생텍쥐페리가 만들어낸 가상의 B-612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46610이라는 실제 천체의 이름 속에 숨어 있는 것입니다.

4. 어린 왕자와 연결된 세 개의 천체

어린 왕자와 생텍쥐페리의 이야기는 한 개의 소행성에만 남아 있지 않습니다.

① 2578 생텍쥐페리(2578 Saint-Exupéry)
1975년 11월 2일 러시아의 천문학자 타마라 스미르노바(Tamara Smirnova)가 크림 천체물리천문대에서 발견한 소행성입니다.
이 천체에는 생텍쥐페리의 이름이 붙었습니다.
약 17km 크기의 소행성으로 주 소행성대 바깥쪽 영역에 속하며,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약 5.2년이 걸립니다.
즉, 이번에는 《어린 왕자》 속 캐릭터가 아니라 작가 생텍쥐페리 본인의 이름이 실제 천체에 남은 것입니다.

② 46610 베시두즈(Bésixdouze)
앞서 살펴본 것처럼 이 천체는 《어린 왕자》의 고향인 B-612를 직접적으로 기념하는 소행성입니다.
46610이라는 숫자를 16진수로 바꾸면 B612가 된다는 사실이 핵심입니다.
문학 작품 속 숫자와 실제 천문학의 천체 번호가 이렇게 연결된 사례라는 점에서 상당히 독특합니다.

③ 프티 프랭스(Petit-Prince)
Petit-Prince는 소행성 자체가 아니라 소행성 45 유제니아(45 Eugenia)를 도는 위성의 이름입니다.
NASA/JPL의 소천체 위성 데이터에서도 공식 명칭이 (45) Eugenia I Petit-Prince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위성은 1998년 발견되었고, 2000년 공식적으로 Petit-Prince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모천체인 45 유제니아는 나폴레옹 3세의 황후 외제니(Eugénie)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래서 그 아들인 황태자(Prince Imperial)를 기념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동시에 발견자들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라는 점도 의도했습니다.
따라서 프티 프랭스는 황태자를 기념하는 의미와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연상시키는 의미가 함께 있는 이름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5. 어린 왕자가 방문한 7개의 별

《어린 왕자》에서 어린 왕자는 지구에 도착하기 전에 여러 작은 별을 방문합니다.

① 325 별 — 왕
첫 번째로 만나는 인물은 왕입니다.
그는 자신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명령할 수 있는 대상이 없습니다.
어린 왕자는 왕을 통해 권력과 권위의 허상을 마주합니다.

② 326 별 — 허영꾼
두 번째 별에는 허영꾼이 살고 있습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직 다른 사람의 찬사입니다.
어린 왕자가 박수를 치면 계속해서 박수를 요구합니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된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③ 327 별 — 술고래
세 번째 별의 주인공은 술고래입니다.
그는 술을 마시고, 왜 술을 마시느냐는 질문에 부끄러움을 잊기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부끄러운 이유가 무엇인지 묻자 다시 술을 마십니다.
스스로 만든 악순환에 갇힌 인간의 모습입니다.

④ 328 별 — 사업가
네 번째 별에는 끊임없이 숫자를 세는 사업가가 있습니다.
그가 세고 있는 것은 별입니다.
그는 자신이 별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인물은 소유와 숫자에 집착하는 어른들의 사고방식을 보여줍니다.

⑤ 329 별 — 가로등 켜는 사람
다섯 번째 별의 가로등 켜는 사람은 앞선 인물들과 조금 다릅니다.
그는 명령에 따라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을 반복합니다.
별이 너무 작아 하루가 매우 빠르게 지나가기 때문에 가로등을 켜고 끄는 일이 쉴 새 없이 반복됩니다.
어린 왕자는 그가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한다는 점에서 다른 어른들과 다르게 바라봅니다.

⑥ 330 별 — 지리학자
여섯 번째 별에는 지리학자가 있습니다.
그는 지식을 기록하지만 직접 탐험하지는 않습니다.
어린 왕자는 이곳에서 자신의 별과 장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지리학자는 일시적인 것과 영원한 것을 구분하면서 장미가 기록할 만한 대상인지 판단합니다.
이 만남은 어린 왕자가 자신의 장미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가 됩니다.

⑦ 지구 — 너무나 거대한 별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린 왕자는 지구에 도착합니다.
지구는 앞서 방문했던 별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여기에는 111명의 왕, 7천 명의 지리학자, 9십만 명의 사업가, 750만 명의 술고래, 3억 1,100만 명의 허영꾼, 462,511명의 가로등 켜는 사람, 총 2억 명의 어른들이 있다고 어린 왕자는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지구에서 어린 왕자가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는 곳은 숫자나 권력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곳에서 그는 뱀과 여우를 만나고, 특히 여우와의 관계를 통해 길들인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그리고 책임진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습니다.

6. 별 하나에 담긴 어린 왕자의 세계

《어린 왕자》에서 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닙니다.
어린 왕자가 떠나온 B-612는 사랑과 책임을 배우는 출발점입니다.
325번부터 330번까지의 작은 별은 어른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무대입니다.
그리고 지구는 그 모든 이야기가 한꺼번에 존재하는 거대한 세계입니다.

그런데 생텍쥐페리가 만든 B-612는 실제 천문학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은 그 이야기를 기억하기 위해 실제 소행성에 46610 Bésixdouze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또 생텍쥐페리의 이름은 2578 Saint-Exupéry라는 소행성에 남았고, Petit-Prince라는 이름도 실제 소행성에 남았습니다.

생각해보면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한 작가가 종이 위에 그려놓은 작은 별 하나가 수십 년 뒤 실제 밤하늘의 천체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어린 왕자》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과도 닮아 있습니다.
별은 그 자체로 특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 별에 의미를 부여할 때 특별해집니다.

밤하늘의 수많은 작은 점 가운데 어떤 별은 그저 하나의 천체일 뿐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향이고, 누군가에게는 추억이며,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됩니다.
생텍쥐페리가 남긴 B-612도 그렇습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별이지만, 오늘날 실제 우주에는 그 별을 기억하는 46610 베시두즈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그 숫자를 알고 있다면, 작은 점 하나도 전과는 조금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그곳에는 어린 왕자가 살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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